옛무덤의 구조나 벽화에 그려진 건축 모양에서 추측할 수 있다. 흙무덤으로는 쌍영총, 무용총, 사신총 등이 대표적이고, 돌무덤으로는 통구지방에 있는 광개토대왕의 무덤이 특이하다. 공예는 통구와 평양지방에서 나온 기와와 벽돌에 새겨진 장식무늬에서 힘찬 고구려의 기상과 솜씨를 엿볼 수 있다.
생활 풍속이나 소망하는 바가 많이 담겨지게 되었다. 이와 같이 고구려고분벽화는 고구려의 국가적 성장에 따른 고구려문화 발전의 거울인 동시에 고구려인의 계세사상등 당대 고구려인의 내세관, 종교관을 반영한 생동하는 영상자료로 그 문화사적 의의가 적지 않다고 할 것이다.
Ⅱ. 고구려 고
애니미즘(animism)
무생물계에도 영혼이 있다고 믿는 세계관. 물신숭배(物神崇拜)·영혼신앙(靈魂信仰) 또는 만유정령설(萬有 精靈說)이라고도 번역되는 애니미즘이라는 말은 라틴어의 아니마(영혼)에서 나온 말이다. 영국의 인류학 자 E.B.타일러가 《원시문화》(1871)에서 이 말을 처음 사용하였는데, 애
고분벽화의 경우 보존상 여러 가지 어려움을 야기시킨다. 화장지법에 의한 벽화는 그림의 선명도가 떨어지는 흠이 있다. 그러나 안료의 산화와 퇴색이 상대적으로 덜하여 오랜 시일이 흘러도 처음의 명도와 채도가 잘 유지되는 편이다. 제1기와 제2기로 분류되는 고구려의 고분벽화는 대부분 이 습지
생활 장면의 표현 이외에도 장의행사의 일환으로 행해졌을 가능성도 있다. 전호태, 『고구려고분벽화 연구』, 사계절출판사, 2000, Pp.51~52.
고구려에서도 씨름이 장의행사의 일환으로 행해졌을 가능성을 검토하기도 한다. 각저총 벽화의 씨름과 주변제재를 살펴보면 씨름은 현실세계에서 행해지는
특징이 있다. 남북조시대 남조의 한족의 무덤에는 고분벽화가 없고, 북조의 것들은 벽돌에 그려진 것이 있을 뿐이다. 또한 요동지방 석실묘의 고분벽화들은 선비족의 것들이 많은데, 선비족은 한족과 다른 동방문화권에서 자라 온 종족이다. 더불어 고구려에서 고분벽화가 가장 발달하여 꽃피워졌다는
고분에 그려진 몇몇의 그림인 듯 쉽지만 그 속에는 그 당시 사람들의 삶과 문화, 사상이 깃들어 있다. 이러한 벽화는 옛 사람의 생활방식 구현에 사료보다 더 많은 도움을 주기도 한다.
벽화의 주제는 생활풍속도, 사신도 등이 있는데, 여기서 나타나는 고구려인의 음악생활을 살펴보도록 하겠다. 우
벽화 천정에 그림으로 장식하기 시작하면서 고분벽화가 형성되었다.
이러한 장례문화의 변천에서 신라와 가야에서는 실물을 대신하는 모형을 만들어 무덤 안에 껴묻는 순장 대체 방식이 오랫동안 지속되었으나, 고구려는 일찍부터 무덤 안을 그림으로 장식하여 죽은 자의 내세를 기리는 방식을 채
생활환경에는 미술문화의 흔적이 남아서 각 시대의 미술 양식 등을 나타내주고 있다. 또한 당시의 사회상, 종교, 사상 및 외부와의 문화교류 등 다양한 면모를 반영하여 보여주기도 한다.
여기에서는 우리 전통사회의 다양한 미술의 형태 중, 암각화와 고구려벽화를 중심으로 살펴보고, 그 곳에서 발